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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성공하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망한다."이 책은 인간 세상에서 나타난 악마가 백 명 버튼을 만들어 이 버튼을 누른 백 명 중 두 명이 파멸하고 한 명이 성공할 수 있는 물건이다. 악마의 이윤은 불행 둘 행복 하나를 하면 불행 하나가 남는다.반면 인간이 악마에게 이익을 주고 싶지 않다면 그냥 버튼을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버튼을 쓰고 말고는 자유의지인 것이다. 누구나 단돈 만 원이면 ‘백 명 버튼’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은 점차 지옥으로 변해간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타인을 짓밟을 준비가 된 사람들과 불행한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들. 어느 쪽이든 눈앞의 ‘백 명 버튼’을 피할 수는 없다. 선택지는 단 하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이 책을 읽었을 때 굉장히 신선하고 다음장을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결말도 깔끔하고 예상되는 결말일 수도 있겠으나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이 책이 생각보다 두꺼운 책의 두께가 아니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거 같다.결국 이 책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지,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같다. 만약 백 명 버튼이 우리가 지금 사는 지구에 떨어진다면 어떨까?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나라가 혼란을 겪을까? 나는 이 책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우리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분명 이 버튼으로 인해 큰 혼란이 생길 것이고, 죽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문은 이거였다."원래 인간의 특성이 그러한지, 파멸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성공을 욕망하는 쪽이 더 많았다."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2026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역사를 바라볼 때 단순히 승자의 입장에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나라를 발전시킨 왕이나 정치적으로 성공한 인물을 높게 평가한다.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과정이 좋지 않아도 결과가 좋으면 성공했다고 단정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결과중심주의 성향이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권력을 얻은 사람보다 권력에 의해 삶이 무너진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갔다.영화 속에서 왕위를 차지한 인물은 자신의 행동이 조선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 주장에 당연하게 동의할 수 없었다. 정말 나라를 걱정했다면, 조선의 앞날과 어린 왕을 걱정했다면 다른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왕과 사는 남자>에 나온 단종의 이야기로 말해보자면 수양대군이 진심으로 조선의 미래를 걱정했다면 단종의 스승과 같은 존재가 되어 어린 왕에게 올바른 정치를 가르쳐주고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되어 어린아이를 진심으로 보살펴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이기에 정치를 하기에 미숙한 부분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이유로 왕위를 빼앗고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수양대군을 과연 나라를 위한 충정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기엔 권위를 잡기 위한 과정과 결과가 너무나 잔인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왕위를 빼앗기 위해 뜻이 맞는 이들과 힘을 합쳐 난을 일으킨 행동은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밖에 보이지 않고 어떤 목적과 이유를 근거로 하더라도 결국 권력을 위해 행동했다고 판단된다. 만약 그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말한다면 그를 진정으로 큰 공을 세운 왕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영화를 보고 나서 먼저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그는 정말 조선의 미래를 걱정했던 것일까? 아니면 조건의 정통성을 지니고 태어나 당연히 왕이 된 어린 왕이 부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누구보다 큰 권력을 가진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는 진실을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수양대군의 행동은 나라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단 권력을 향한 욕망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생각된다.무엇보다도 가장 안타까웠던 인물은 폐위된 어린 왕인 단종이었다. 단종은 매우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자신의 힘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살았을 것이며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함부로 넘볼 수 없다고 생각한 왕이라는 자리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조차도 지킬 수 없었던 그의 모습은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다. 영화에서 어린 시절부터 바로 옆에서 단종을 보필하던 궁녀인 매화와 단종의 관계를 보고 많은 여운이 남았다. 단종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원래 자리였던 왕의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한 목적으로 단종을 끝까지 왕으로 모셨던 금성대군과 함께 수양대군에 맞서 싸우고자 유배지를 떠나는 상황에서 자신을 끝까지 지켜줬던 매화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내용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정말 많이 울었었다.“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대는 나와 함께했다. 그대는 나의 벗이요, 누이요, 어머니였다. 그 고마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나는 길을 떠날 것이다. 먼 훗날 다시 태어나면 그때도 나의 벗이 되어 주면 좋겠구나. 나도 기꺼이 그대의 벗이 될 것이다.” 이 편지의 내용과 함께 단종은 수양대군에 의해 죽게 되고 궁녀인 매화는 자결하게 되는 데 이렇게 단종을 아끼며 끝까지 왕이라고 생각해 준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나는 승자의 기록 뒤에 가려진 패자의 아픔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왕위를 차지한 사람의 성공보다 왕위를 빼앗긴 어린 왕의 슬픔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영화를 본 후 나는 그가 다음 생에는 권력과 정치의 희생양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왕으로 태어나지 않아도 좋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부디 다음 생이 있다면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꿈을 이루는 그런 평범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지구에서 한아뿐/정세랑/난다/2019<지구에서 한아뿐>은 지구인 한아와 외계인 경민이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지구인 경민과 11년째 사귀고 있던 한아는 자신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경민에게 늘 서운했고, 체념했지만 이를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던 그때 운석이 떨어진 캐나다에서 돌아온 경민은 어딘가 낯설었고 달라진 경민의 모습이 의심스러워 뒤를 밟다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한아는 처음엔 외계인 경민의 존재를 이상하게 느끼지만, 점차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모습에 익숙해지며 서로 사랑하게 되고 이후 지구인 경민과 외계인 경민이 계약하여 기존의 경민은 우주의 끝을 보러 갔고 망원경 종족인 외계인 경민이 곁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한아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외계인 경민은 한아를 다시 살려내려 하고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는 문구와 함께 소설은 끝난다. 나는 소설에서 외계인 경민의 몸으로 만든 망원경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망원경 기술이 굉장히 발달해서,”, “몸의 일부를 제련해서 만드는데, 거의 실시간으로 우주를 볼 수 있어.”, “망원경은 몸의 일부로 만든 것이라서, 주인이 꿈을 꾸고 있을 때는 스스로 움직여. 대개는 어떤 일관성 없이 그저 산발적으로 우주의 곳곳을 비추고 있지. 그런데 내 망원경은 달랐어. 깨어나서 내가 잠든 동안 어디를 비췄는지 체크해 보면 꼭 비슷한 지점을 스쳐 갔더라고.”라는 구절이 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몸의 일부로 만든 망원경이 한아가 있는 매우 작은 곳이 계속 보게 되었고 “그러니까, 웃기지? 나보다 내 망원경이 더 먼저 널 사랑한 거야.”라는 말을 한다. 자신의 일부가 한아를 먼저 사랑했고, 자신이 한아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과정이 낭만적이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여 이렇게 표현한 작가의 문체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너만…… 너만 아름다웠어. 빛났어. 눈부셨어.”라는 구절도 인상 깊었는데 망원경 이야기를 할 때 외계인 경민이 왜 굳이 본인이었냐는 한아의 질문에 했던 답변이다. 우주에서 보면 한아는 매우 작은 개체이고 빛난다고 했던 한아는 아마 매우 작은 빛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망원경이 자신보다 먼저 한아의 빛을 찾았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먼저 한아를 찾게 되어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이 너무 독특하면서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라 이 장면을 계속 생각해 봤었다. 그래서 내가 예상하기로 우주에 있는 사람인 한아를 빛으로 생각해 보면 우주에서 본 지구는 바다인 파란색, 땅을 볼 때 가장 많이 보이는 초록색이 섞인 청록색의 빛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처음 보는 빛인 청록의 빛, 즉 새빛을 외계인 경민이 사랑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다.책을 읽고 난 후 떠오르는 질문 하나가 있었다. 외계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이처럼 근본적인 질문에 바로 '예'라고 대답하긴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외계인과 만난다면 신기한 것보다 무서움과 두려움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아무리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해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존재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호한 남자친구가 있는 상황에서 나만을 생각해 주고 나만을 사랑해 주는 그런 완벽한 외계인이 찾아온다면 언젠간 사랑에 빠질 수 있지만 그 사랑은 비교를 통해 완성된 사랑이고 아마 비교 대상이 없는 외계인 자체를 사랑하기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했다.평소에는 절대 해보지 못할 상황과 생각들을 책을 읽음으로써 상상하고 고민해 보게 되고 어떤 사랑을 우리는 갈망하고 있을지에 대한 생각도 계속해 보게 되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도 눈에 띄게 좋았지만, 지구와 외계의 사랑을 우주와 같은 표현으로 설명한 작가에게 존경심이 들었고 이번 기회에 정세랑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급류/정대건/민음사/2022<급류>는 물이라는 속성을 기반으로 불행을 통한 성장과 적적한 사랑을 보여주는 책이다. 아빠와 함께 수영하던 도담과 해솔은 점차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지만, 도담의 아빠인 창석과 해솔의 엄마인 미영이 불륜 관계인 듯한 상황을 인식하게 되어 그 둘이 만나기로 한 밤에 둘의 뒤를 밟게 되어 거센 파도인 급류에 창석과 미영이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이 사건으로 인해 둘은 헤어지게 된다. 이후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정비하게 되어 둘은 다시 만나면서 소설은 끝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내가 주목한 점은 먼저 도담과 창석의 관계였다. 창석은 도담에게 “중성 부력에서는 무중력 상태처럼 자유롭지. 아빠는 도담이가 중성 부력에서처럼 평온하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표현을 부력의 종류 중 하나로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상태인 중성 부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전하는 부분과 이 말을 듣고 난 도담이 물속에서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끼고 중성 부력 상태로 유영하는 바닷속은 중력이 없는 푸른 우주처럼 신비롭다는 기분을 느끼는 대목이 너무나 인상 깊었다. 아마 작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이 우선순위에 있으며 자유롭고 평온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도담과 창석,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창석과 똑같이 소방관이 된 해솔은 화염이 가득한 현장에서 죽을 수도 있던 상황에도 불구하고 헤어졌던 도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반드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때 생각했어. 누군가 죽기 전에 떠오르는 사람을 향해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랑이란 말을 발명한 것 같다고. 그 사람에게 한 단어로 할 수 있는 말을 위해 사랑한다는 말을 만든 것 같다고. 그때 깨달았어. 사랑한다는 말은 과거형은 힘이 없고 언제나 현재형이어야 한다는 걸.”의 문장에서 해솔이 생각하는 사랑의 완성본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해솔과 도담은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겪는데 다시 만나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될까봐 주저하는 모습이 보였다. 해솔은 자신이 전에 깨달았던 사랑의 과거형인 사랑했다가 아니라 언제나 현재형인 사랑한다는 감정을 통해 도담과 다시 재회했다. 즉 해솔이 말하는 사랑이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그렇다면 도담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구절에서 알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구절을 이야기하고 싶다. 해솔과 도담은 추모선을 타고 창석의 바다장을 치렀던 21번 부표까지 가는 과정에서 소녀가 바다에 빠졌는데 해솔은 배에 있는 구명환을 집어 들고 바다에 뛰어들고 12년 만에 하는 수영이지만 창석이 알려줬던 부력을 느끼며 능숙하게 팔과 다리를 내저어 소녀를 구한다. "도담은 여유롭게 헤엄치며 웃었다. 자유롭다. 내가 얼마나 수영을 잘했던가. 수면에 나와 눈부신 햇살을 받으니 살아 숨쉬는 그 자체로 좋았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있을지 모를 미래에 목매지도 않으면서 진정으로 살고 싶어졌다.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거센 물살을 헤엄치듯이."라는 문구에서 도담은 과거와 미래보다 지금 살아가는 현재 그 자체를 갈망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창석이 그토록 바랐던 도담의 자유가 이 장면에서 극대화되었고 도담은 이 상황을 통해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렇게 해솔과 도담은 모두 과거를 그리워하고 미래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지금을, 현재를 위해 살아가고 사랑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단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서술하는 것이 아닌 작가가 우리에게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었고 내가 예상하기로 작가는 우리에게 현재를 사랑하고 살아가라고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소방관/곽경태/2024<소방관>은 2001년 방화 때문에 발생한 화재로 인해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은 홍제동 방화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평소 소방차나 구급차의 사이렌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음에도 잠깐 지나가는 소리처럼 넘겼지만,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는 사이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누군가는 지금 힘든 싸움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특히 영화에서 소방관인 남편이 다쳐 응급수술을 하러 들어갔고 그 소식을 들은 부인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구조대장에게 “살았어요?”라고 묻는 장면이 소방관의 가족으로 살아가며 마지막을 항상 염두에 두고 매일을 살아가는 심정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또 화재 사건으로 인해 예비 신부의 소방관인 예비 신랑과 소방관인 친오빠를 모두 잃게 되고 전에 자신의 결혼식에 정장을 입고 오라는 말에 안 입을 것처럼 했던 친오빠의 소방서 사물함에는 할인받아 산 정장이 걸려있었는데 이 장면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가족인 사람과 나의 가족이 될 사람을 동시에 잃게 되면 어떤 심정일지 차마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인데 영화처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졌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마지막으로 영화에 나왔던 소방관의 목소리를 통해 전하는 대사 하나가 있었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내가 늘 깨어 살필 수 있게 하시고 그리고 만약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희 아내와 가족들을 돌보아 주소서.”라는 대사는 소방관들이 구조대장의 철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불 속에 남아있는 사람을 찾다가 순직하게 된 이후 건물 바깥 상황과 시간이 지난 후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전하는 대사였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찾아보니 실제로 사고 당시 순직했던 소방관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소방관의 기도라는 제목의 시라고 했다. 특히 뜨거운 불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겠다는 의지와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해도 남아있는 가족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어 감동과 감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죽음은 항상 슬프고 안타깝지만 다른 이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사람의 죽음은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다. 소방관은 신적인 존재가 아닌 결국 사람이고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목숨을 받치는 사람이기에 항상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같은 소방관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의 세리머니/조우리/위즈덤하우스/2023년이 책은 공무원인 주인공이 동성 혼인신고를 통과시키는 이야기이다. 예전에는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관련된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인지 예전보다 열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최근 동성애와 관련된 소설을 자주 마주쳤고,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동성애를 주제로 한 소설 중에서 가장 현실에 가까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에 있을 법한 소재들이 있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이 작품에서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어떤 일이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동성애자이지만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헤어진다. 그러나 동성 혼인신고를 통과시키는 일을 하면서 용기를 얻게 되어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 이 또한 동성애를 다루고 있지만, 사회의 시선과 주변이 두려워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못했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주변의 사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주변의 시선을 이겨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존경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인공이 존경스럽다고 느꼈다.
금요일엔 시골집으로 퇴근합니다/김미리/휴머니스트/2022년시골은 나에게 따뜻한 이미지이다. 할머니가 생각나게 하고, 여름에는 선선한 대청마루가 겨울에는 뜨끈한 온돌방이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지나가다가 이웃을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하던 할머니의 모습도 떠오르게 한다.이 책을 읽는 동안에 나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시골을 생각할 수 있었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시골을 떠올리는 것이 좋았다.이 책의 작가는 5도 2촌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일주일 중에서 5일은 도시에, 2일은 시골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살면 피곤할 것 같지만, 작가는 오히려 자신의 삶에서 지쳤던 것들이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이것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곳에 머무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고, 자신의 마음의 안식처가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이 책의 내용 중에서 ‘언젠가는 시골집에서 살아볼거야’에서 ‘언젠가’를 빼버리기로 했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삶을 살다 보면 시험만 끝나면, 올해만 지나면, 이번 일만 해결하면 등등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어도 항상 미룬다. 계속 미루다가 많은 사람들이 결국 늦었다는 이유로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언젠가’를 빼버리기로 했다는 글을 읽으면서 원하는 게 있다면 당장 시도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정말 이꽃님의 소설 답게도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처음 읽었을 때 '아니 남자가 심각한데?'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이상한 부분이 드러난다. '아니 여주인공이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하면서.. 그리고 여주인공과 다른 학교 친구들의 말이 완전히 다르다. 처음에 여주인공이 피해자라는 인식으로 읽어서 다른 학생들이 여주인공을 일부러 왕따 시키려고 거짓말을 섞어서 말하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학생들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었다. 정말 읽으면서도 여주인공은 배짱도 좋은 거 같다. 아니 어떻게 경찰도 속일 수 있지? 먼저 경찰이 다른 분들과도 이야기를 하고 왔다고 말했는데도 여주인공은 교묘하게 자신이 피해자라는 양 오히려 자신이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며 억울함을 표출한다. 정말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이미 증언을 다 듣고 온 경찰도 속을 뻔 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이 어디까지 영악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치가 떨렸다.연인이라는 친밀한 관계를 빌미로 상대를 제 입맛대로 휘두르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때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큰 이슈가 되었을 때,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토록 악독할 수 있는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더 무서운 건 이것이 미디어 속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고,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 후로 나 역시 사람 관계에 대해 깊이 조심하게 되었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고 상처 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가스라이팅이 얼마나 무서운지, 왜 해서는 안 되는 짓인지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혼자서도 잘 사는 걸 어떡합니까/산아로미/부크럼/2024년요즘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유는 다양하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일 수도, 혼자가 편해서 일수도,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또한 이혼처럼 같이 살다가 혼자가 된 경우도 늘었고, 딩크족처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살지 않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그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생각하다 보면 나 또한 혼자 사는 것을 도전해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막상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면 혼자 살 때 아프면 어떻게 하지, 나중에 나이들면 어떻게 하지 등과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또한, 가족을 만드는 행복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행복을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혼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알려주며, 이러한 걱정들도 해소시켜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 살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나에게 관심이 많고 이해해야하며, 혼자 사는 것은 나 스스로를 잘 돌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사는 것은 생각보다 재밌고, 멋진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 작가님이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일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처럼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교 가고, 대학교 졸업하면 취업하는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가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자유롭게 살아가는 작가님을 보면서 하고 싶은 삶을 사는 것을 멋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 성향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해진 루트를 가겠지만, 언젠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그 일을 망설임 없이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문학동네/2013주인공은 살인자이다. 그러나 살인을 들키지 않은 상태에서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리게 된다. 그런 상황 중, 주인공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이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의문이 들었다. 주인공은 정체가 무엇일까? 주인공은 정말 살인자일까? 주인공은 살인자의 피해자는 아닐까? 주인공의 딸의 정체는 무엇일까? 딸은 맞을까? 딸의 남자친구의 정체는 무엇일까? 등 많은 의문이 들게 만든다.이 모든 의문이 마지막에 쏟아내듯 나오는 진실들로 해소가 되며, 그 과정에서 짜릿한 도파민을 느낄 수 있다.주인공은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평소 뉴스를 보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 받는 처벌을 보면서 저런 처벌을 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보통은 감옥에 갇히는 처벌을 많이 받고, 그 처벌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살인자의 기억법에서의 살인자는 자신의 살인을 들키지 않은 채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알츠하이머로 인해 자신이 자기가 죽인 사람의 딸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딸의 남자친구로부터 딸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딸을 진심으로 가족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알츠하이머로 인한 착각이었다. 나는 이것이 살인자에게 주어진 벌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경험이야말로 살인자에게 주어져야하는 처벌처럼 느꼈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런 처벌을 바라면 안되지만 피해자의 고통을 실감할 수 있는 고통을 가해자 또한 느껴야 제대로 된 처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일본 로맨스 소설로 고등학교 때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읽다가 마지막에 "엥?"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 결말이 내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생각한 결말이 아니어도 마음에 든 경우가 있지만 어째선지 이 책은..반대였다. 하지만 반전이나 슴슴한 로맨스를 찾으신다면 한 번쯤은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먼저 줄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지 못하는 외로운 학교생활에 지쳐가던 열일곱 살 소녀 아이하라 미즈키에게 도착한 편지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그 편지에는 “네가 항상 눈에 밟혀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라는 말과 함께 사토라는 처음 보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낸 사람의 얼굴도 나이도 모르지만, 아이하라는 신기하게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아름다운 편지에 위로받는다. 그래서 그 편지를 쓴 사토라는 인물이 누군지 알아내는?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을 집고 읽었을 때 첫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아니 이게 이렇게 이어진다고?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남주인공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반전이 아니었을까 한다.소심한 여주인공이지만 편지를 찾으면서 소심한 면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나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친구와 얘기를 하거나 공모전,행사에 참여하다보니 그 점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나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여주인공인, 아이하라 미즈키를 응원했던 거 같다. 평소에 읽는 인간 실격이나 절창 같은 소설만 읽다가 간만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본 거 같아 좋았다.
<왕자와 드레스메이커>는 드레스 입기를 사랑하는 왕자 세바스찬과, 그를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드는 재봉사 프랜시스의 이야기를 다룬다. 화려한 패션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두 사람의 꿈과 일, 그리고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통찰이 담겨 있다.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솔직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린이 도서도 어른에게도 깊은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하여 읽게 되었다. 작품 속 세바스찬 왕자는 밤마다 가발을 쓰고 드레스를 입은 채 성벽을 넘는다. 이는 단순히 왕실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일탈이 아니다. 드레스를 입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어 빛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며, 한 인간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찾으려는 절실한 몸짓이다.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내 안의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주변의 눈치 때문에 스스로를 옥죄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된다. 사실 남자와 드레스라는 조합을 이질적으로 느꼈던 내 모습이 이 책 앞에서 조금 머쓱해졌다. 편견 때문이라기 보다 어쩌면 숨 쉬듯 당연하게 여겨온 몸에 밴 생각일지도 모른다. 내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산더미 속에서 보석을 찾는 것만큼 어렵고, 그 보석을 갈고 닦아 빛을 내는 과정 또한 가시밭길이다. 개성이 존중받는 세상이라지만 타인의 시선과 평가는 여전히 두렵워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걷는 세바스찬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이러한 변화는 현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뉴스에서 본 스페인의 남자 초등학교 교사들은 치마를 입고 교단에 섰다. 치마를 입었다는 이유로 놀림당하는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들은 옷에 젠더의 구별이 없으며,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든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들의 실천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교육이었다.역사를 되짚어봐도 치마가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적은 없다. 고대 로마 군대는 짧은 치마를 입었고, 스코틀랜드의 민족의상 킬트나 중국의 창파오 역시 남성들이 입던 의복이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화려한 하이힐을 신고 각선미를 뽐내며 발레를 즐겼다. 오늘의 편견은 한때 누군가의 일상이었고 당당한 자랑이었다. 결국 편견은 차별을 낳고 나와 타인을 분리하며, 경험하지 못한 것을 단정 짓게 만들어 우리를 틀에 가두곤 한다.이 만화책은 스스로를 드러내도 괜찮다고 안심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이해하고 함께 패션쇼 무대에 서는 모습은, 어린이 책이 어른에게도 얼마나 큰 교훈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지를 다시금 증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