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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토피아 2는 내가 주토피아 1을 너무 재밌게 보고 노래까지 외울 정도로 좋아해서 인지 1년을 기다렸을 정도로 너무나 기대되는 영화였다. 모두가 가볍게 웃고 끝나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소소한 감동과 디즈니 영화가 늘 그렇듯 끝나고 여러 다짐과 감상을 하게 됐다. 친숙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지만, 다루는 주제는 어린이 영화라기엔 마치 어린 왕자처럼 어른이 되어서 알 수 있는 유희가 많아 참 좋다. 사회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내가 생각한 주토피아 2의 주제이다.이번 이야기에서는 편견과 화합을 담았던 1과 달리 변화한 환경 속에서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더 두드러졌다. 익숙했던 캐릭터들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긴다.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있고 이기와 이타의 감정에 대해 순수하게 배울 수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옳은 선택’보다 ‘각자의 이유’가 중요하게 드러난다.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행동한다는 점이 참 우리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또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맞고 틀렸다가 없다는 교훈까지 준다. 주토피아라는 세계는 나에겐 여전히 흥미롭고 앞으로 또 시리즈가 나오면 기대하며 볼 것이다!
패왕별희는 고등학교 때 중국어 선생님이 보여준 걸 본 게 처음이고 그 다음이 영화관에서 재개봉 해서 보러 갔었다. 러닝 타임도 길고 직관적인 영화는 아니고 이 시대상과 줄거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완벽히 몰입할 수 있는 영화라 2번째 볼 때는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다. 경극이라는 낯선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는 경극에 설치되는 요소들과 대조적으로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다. 무대 위에서 살아온 인물들이 정작 자기 삶은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저 땐 정말 그랬을까? 생각 해보게 됐다. 특히 인물들이 역할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이 안타깝고 슬프다. 연기를 하다 보니 인생도 연기처럼 흘러가 버린 느낌이었다. 어느 주인공은 끝까지 역할에 매달리고, 어떤 이는 현실을 택하려 하지만 자기 인생마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게 안타까웠다. 영화가 정말 호흡이 길고 어렵지만, 안에 삽입된 음악과 경극의 특성상 화려하고 여러 우스꽝스러운 요소 사치적인 요소들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사랑인지 집착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감정, 시대에 휘둘리는 개인의 삶 보고 나서 여운이 남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 책을 2번째 읽게 된 이유는 술술 읽히는 단순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이 안 들 때 책방이나 조용한 카페에서 읽기를 추천한다. 이 책의 공간에서 누군가는 결정을 미루고 있었고, 누군가는 확신 없이 하루를 버텼다. 도파민 넘치는 장면이나 사건은 없지만 그 장면들이 일상적이고 역동적이라고 느꼈다.이야기가 쉬움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보다는 읽은 후에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재밌었다. 이 책은 꿈을 쫓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확신 없는 나 자신 없는 나 잠시 멈춰 있는 시간도 흘러가는 우리 이야기의 일부라고 말해준다. 괜찮아야 하는 하루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은 하루 괜히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하루..책 속 인물들의 망설임과 느린 선택을 보면서, 이 책의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이 책에서는 독자가 자기 하루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다. 읽는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문득 떠오를 때 더 의미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걱정이 더 컸다. 매드맥스 나는 이 시리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냥 액션 영화 애호가로써 꼭 봐야지 했었다. 하지만 예고에서 본 퓨리오사라는 인물이 되게 강렬해서 개봉 전부터 꽤 기대했었다. 퓨리오사의 과거 이야기가 재미있을지 앞 내용도 모르는데..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 영화가 내 인생 영화가 되었다.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도 물론 존재한다. cg 적으로도 굉장히 완성도 또한 높다. 또 한 인물이 어떻게 그렇게 단단해지는 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냉혹한 집단 속에서 퓨리오사는 처음부터 강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 빼앗기고, 도망치고, 버려지고 하는 사람이다. 후에 퓨리오사는 단단해지고 냉정해지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사가 어떻게 이렇게 완성도 있을 수 있을까 생각 했다. 액션+스토리가 웅장한 만큼 사운드가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가 더 잔인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싸움 장면 죽이는 장면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스토리가 훌륭하다.전개 속도는 생각보다 느리다. 분노의 도로를 기대하고 보면 당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느린 시간 덕분에 이 세계가 얼마나 비정한 곳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느낄 수 있다. 특히 퓨리오사가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 순간들마다 옳은 선택이라기 보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하는 퓨리오사의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나의 심장을 뛰게 했다.그 세계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서사라는 느낌이었다. 화려함보다는 무게감이 남는 영화였고, 끝나고도 이야깃거리 숨겨진 것들을 찾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다.
아바타 2를 보기 전에는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1편이 워낙 인상 깊었고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줄거리가 잘 기억이 안 났다. 그저 재밌었었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1월 첫 영화로 이걸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전의 스토리가 있는 상황에서 얕은 팬인 관객에게 3시간 동안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지 그 노력이 보였다. 나는 영화를 보고 판타지라는 생각보다 그 세계를 다시 한번 살아본 느낌 그 세계가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특히 인상 깊었던 건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 지켜야 할 존재가 생겼을 때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전작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전투 장면보다도 가족이 갈등하고 다시 이어지는 과정이 더 기억에 남았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은 판도라라는 낯선 세계에서도 공감할 수 있었다. 러닝타임이 길다는 말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크게 지루하지 않았다. 그 세계관을 이해 시켰다는 점이 좋았다. 아바타 2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닌 하나의 세계를 체험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여러 채널을 통해 아바타를 함께 만든 배우, 작가, 감독 등의 영상을 보면서 이 아바타라는 영화가 단순히 액션, 드라마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어떤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고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노력에 이 영화가 더 완성도 있는 영화가 되었구나 관객이 그것에 잘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괜히 마음이 가라앉는다. 집에 있으면 꼭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꼭 슬픈 건 아니다. 그냥 평소보다 생각이 많아질 뿐이다. 창문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무 이유 없이 예전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이미 다 끝난 일들인데도..나는 가끔 내가 주위를 둘러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야 할 일, 맞춰야 할 기준, 남들이 정해 놓은 속도 같은 것들에 맞추느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오늘 하루를 생각했을 때 정신없으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쉬고 있으면 괜히 뒤처지는 기분이 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쓸모없는 시간처럼 느껴진다.그런데 비 오는 날에는 그런 생각들이 조금 느슨해진다. 오늘 하루를 꼭 의미 있게 보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고, 그냥 이렇게 흘러가도 큰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숨 쉬고, 밥 먹고, 잠드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끝난다.요즘은 완벽한 하루보다 덜 힘든 하루가 더 좋다. 대단한 성취보다 마음이 조금 편안한 날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비가 오는 날은 그런 생각을 하기에 딱 좋다. 이 날은 나를 생각하고 질문하기보단 비와 함께 흘려버리고 싶다.아마 내일이 되면 다시 바빠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때 만큼은 창밖의 빗소리를 핑계 삼아, 그냥 이렇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지나가면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돈 안 쓰면 죽는 병, 이두온, 위즈덤하우스, 2025<플람마>어느 날부터 세상엔 '플람마'라는 병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 병의 특징으로는 걸리게 되면 탈모가 진행되고, 빈 머리에는 혹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 있다.문제는 이 혹이 점점 커진다는 것인데, 커질대로 커진 혹은 터지면서 병에 걸린 사람의 머리도 같이 터트려버린다. 치료법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혹이 커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선 소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출근을 위해 교통카드를 충전하는 것보다 번지점프를 예약하는 것과 같이 소비도 그냥 소비가 아닌 과소비를 할수록 효과가 좋았다. 개인적으로 플람마의 무서운 점은 혹이 터지면 죽는다는 점 외에도 정신적으로도 피해를 입힌다는 점같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탈모는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줄 것이며, 그 자리에 혹이 생겨나는 것으로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탈모, 혹이라는 알기 쉬운 증상으로 사람들은 플람마에 걸린 사람들을 쉽게 구분할 수 있고, 자연스레 플람마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벌어지게 될 것이다. 사람들간의 구분을 만들기 때문에 플람마는 무서운 병이다. <치트키>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치트키'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사람들간의 쓸모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혼란에 빠진 사람이고, '불주먹'는 쓸모없는 행위를 계속하는 사람이며, '젠틀맨'은 자신과 자신의 요구치가 상반되는 사람이다. 치트키는 플람마에 걸리고 직장을 잃은 사람으로 어떻게든 플람마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 불주먹의 집에 간 것도 불주먹이 제작한 조각상을 사기 위해서였다. 불주먹은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말하는 조각미술을 하는 사람으로 플람마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조각상을 제작하였다. 치트키는 불주먹에게 조각상을 돈을 내고 산다고 하지만 불주먹은 돈은 지긋지긋하다고 말한다. 불주먹에게 조각상은 자신의 소중한 작품으로 값을 매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플람마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소비야말로 현명한 것이다. 특히 플람마에 걸리지 않은 불주먹과 달리 플람마에 이미 걸린 치트키에게 있어서 소비는 더욱 중요한 행위일 것이다. 치트키와 불주먹 사이의 조각상을 대하는 태도에는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하였다. 젠틀맨에 의해 불주먹의 조각상은 깨지게 되고 불주먹은 이를 바라보다 치트키에게 조각상을 판매한다. 조각상을 구매한 후 치트키는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먹고 싶었던 밤도 구매해보고, 직장도 다시 구하였다. 그러나 5년이 지나도 치트키는 아직 죽지 않았다.질병관리본부청에서는 치트키가 플람마에 걸린 시기부터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은 기적이라며 백신 제작에 협력을 요구하나 치트키는 도망친다.무쓸모가 쓸모인 세상에서 인류의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 쓸모인지 무쓸모인지 정리가 끝나기 전까지 치트키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조각상은 치트키에게 정말로 쓸모 없는 것이었다. 치트키는 조각상을 집에 넣기 위해 침대를 포기해야 했으며 집의 절반이상이 조각상에게 차지 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매우 쓸모없는 조각상이 치트키의 수명을 늘려주었다. 치트키는 조각상을 구매하고부터 점차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플람마를 막을 상품들을 사느라 밤이 먹고 싶어도 참아야만 했는데, 밤을 무려 100kg이나 사서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를 해먹었고 남는 것은 나눔을 하기도 했다. 직장을 잃고 백수가 되었으나, 자격증 공부를 해 직장을 다시 얻었고 저축도 시작하였다.---어떻게 보면 조각상은 치트키에게 몹시 쓸모있는 것일수도 있다. 말그대로 지금 당장 필요하냐, 없으면 죽는가의 관점에서는 쓸모가 없지만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가의 관점에서는 쓸모가 있다.조각상 옆에서 혼잣말을 하고, 잠을 드는 등의 행동을 보면 치트키가 조각상에게서 왠지 모를 안정을 얻는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조각상은 쓸모와 무쓸모의 차이에 대하여 치트키에게 계속 고찰할 기회를 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조각상과 치트키의 관계를 보고 세간적으로 알려진 플람마를 늦추는 방법인 출근을 위해 교통카드를 충전하는 것보다 번지점프를 예약하는 것이 잘못 알려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확히는 그게 왜 플람마를 늦추는데 도움이 되는가이다. 치트키가 그러했듯이 지금까지는 말 그대로 안 해도 되는 소비인 과소비를 하기 때문에 플람마를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은 거기서 쓸모를 찾기 때문이 아닐까 출근을 위해 교통카드를 충전하는 것은 지금까지 매일 해온 행위지만 번지점프는 평소 겪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스릴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으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에 쓸모가 있다. 또한 떨어지는 동안 지금껏 보지 못했던 풍경을 눈에 넣을 수 있다는 새로운 풍경 발견에 쓸모가 있고, 만약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쓸모가 있다. 이와 같이 플람마를 늦추는 방법은 바로 쓸모를 계속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치트키는 무쓸모라고 여기던 조각상으로 인하여 먹고싶은 것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직장을 얻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치트키는 쓸모와 무쓸모에 대해 고찰하게 된 것이 아닐까.위의 생각과 더불어 불주먹이 플람마에 걸리지 않은 방법은 남들이 쓸모없다고 하는 조각미술에서 쓸모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배우는데 돈만 많이 들고,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기 힘든 분야이지만 불주먹은 이러한 조각미술에서 쓸모를 발견했기 때문에 플람마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의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 쓸모인지 무쓸모인지 정리가 끝나기 전까지 치트키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며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 이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 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생존에 대해 결단을 내리는 것은 한 사람이 결정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문제이다.이에 대해 치트키는 기나 긴 시간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시작점이 되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뒤에 여러 내용이 이어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작가의 인터뷰에서 연작의 첫 번째 소설이라는 말을 보았을 때 몹시 기뻤다. 뒤에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과연 플람마의 백신은 개발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흔히들 겪는 과소비 현상과 엮어 이와 같은 소설을 만들어내다니, 역시 작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고 느꼈다.
트윈, 단요, 교보문고, 2025쌍둥이는 처음보면 누가 누군지 구별하기 쉽지 않지만, 계속 볼수록 그 사람만의 특징이 눈에 보이게 된다. '한 쪽은 참을성이 좋은데, 한 쪽은 참을성이 좋지 않다'나 '한 쪽은 고수를 먹을 수 있는데, 한 쪽은 고수를 먹지 못한다'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가족이 제일 먼저 눈치챌 것이다. 타인의 두 배, 아니 몇십 배는 넘는 시간을 접할테니 말이다.그러나 트윈의 쌍둥이의 아버지 '민형'은 이를 구별해내지 못했다. <민형- 극단적인 능력주의와 폭력정당화>민형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하였다. 자식들이 좋은 의대에 가서 의사가 된다면 민형에게는 '의대에 합격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의사로써 활동하는 딸'이 하나 생기게 된다. 민형은 이를 위해 본인이 만족할만한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계속해서 딸들에게 수능을 보게 하는 황당스러운 일도 시킨다. 민형의 쌍둥이 딸 지연, 우연은 그렇게 아버지에 의해 4수를 보았고 우연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지연은 수학을 밀려쓴 탓에 5수에 도전하는 중이었다.이것만 보면 민형이 학구열과 인정욕이 강한 아버지이긴 하나 이것 외엔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민형의 세계는 극단적인 실력주의 세계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실력이 없으면 같은 인간취급도 하지 않는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을 때는 금방 손이 올라가곤 한다. 딸들도 이러한 실력주의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에 합격한 우연에게는 노골적으로 잘해주려는 모습을 보이고,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고 5수중인 지연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말투, 성격, 특징 모든 것은 둘째치고 일단 능력이 있나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여기서 민형이 간과한 것은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는데는 외면해온 말투, 성격, 특징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에 들어가기전 쌍둥이를 구별하지 못한다고 말했듯이 우연에게는 잘 해주려는 맘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누가누군지 알 수가 없어서 누군지 물어보고 우연일 경우 잘해준다. 민형의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였다. 딸들이 누군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정상적인 아버지라면 부끄러움 혹은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그러나 민형은 당당하다. 정확히는 신경쓰지 않았다. 민형은 손해보는 삶은 살지 않겠다는 주의로, 줄껀 주고 받을 건 받는다라는 가치관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성향이 너무 강했다. 그는 감정적으로도 손해보는 상황은 만들지 않겠다는 주의로, 타인을 왜 용서해야하는지, 왜 이해해줘야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내가 그로 인해 금전적 손해를 보았는데 왜 나는 그를 용서해줘야 하는거지, 믿음을 가지고 남에게 배풀 줄 알아야 한다는데 내가 무엇을 기반으로 남을 믿어줘야 하는거지 와 같이 그는 너무나도 손해보지 않는 합리적인 삶에 매달렸다. 딸들의 경우도 그렇다. 업무때문에 바빠서 자주 못 만나니까 구분하지 못하는건 당연한 거다. 내가 관심이 없는게 아니다. 만약 내가 잘못했다고 하더래도 지금까지 금전적으로 지원해줬는데 그 정도는 잘못해도 되지 않는가? 계속된 합리화와 손해에 대한 생각은 작중 내내 민형을 옮아맨다.<쌍둥이> 민형의 딸 우연, 지연이 그러했듯 민형도 쌍둥이 형제가 있다. 바로 민호다. 민호는 엘리트 코스를 달려온 민형과 달리 아버지께 5천만을 빌려 술집을 차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민호도 민형과 같이 줄껀 주고 받을 건 받는다라는 가치관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으나, 민형과의 차이점이라면 굳이 재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상대방이 갚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도 있다.'내가 도움을 줬는데 아무 보상도 없으면 그거대로 상관없고, 만약 보상이 있다면 그건 뜻밖에 수확이고' 민호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이는 허울뿐인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민형보다 민호가 더 질이 나쁘다고 느껴졌다.민형은 극단적인 실력주의고 이에 대한 태도가 눈에 훤히 보일 정도로 노골적이다. 또한 감정이 쉽게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민형을 상대할 때는 잠깐 욕먹고 끝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호는 다르다. 겉으론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된다며 실실대지만 계속해서 언질을 준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아 일을 새로 하려는데 ~만원이 부족하네' 이런 말을 도움을 준 사람이 꺼낸다면, 당연히 상대방은 지금까지 받아온 도움들을 생각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 것이고, 특히 상대방이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된다고 이야기하고 다닌 사람이라면 이러한 양심의 가책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적이게 되며 지금껏 자신이 받아온 도움보다 더욱 크게 보상하게 된다. 말로는 기브 앤 테이크라 하지만 사실은 민호쪽이 이득을 보는 상황인 것이다. 단지 보상을 받는데 조금 기다림이 필요할 뿐 결국 민호는 이득을 본다. 작중 극 후반부에 민호가 지연에게 간을 기증받는걸 민형에게 들켜 민형과 대화하는 상황이 나온다. 민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은 남이 해달란대로 해줬을 뿐인데 거기서 보답이 온 거라고, 그러나 지연과 대화하면 지연은 민호에게 '받은 것이 있으니까'라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 민호가 종종 넌지시 간이 안 좋아져 수명이 얼마남지 않은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민호는 민형이 뭐라하든 본인은 다 상관없고, 이제 민형네 가족사정엔 끼어들기 싫고, 오직 간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결국은 간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족 관계가 일그러지든, 민형한테 얻어맞든, 지연이 죽든 말이다. 그래서 가족 중 자신에게 빚이 있고 자신을 좋게 보고 있는 민형네 딸에게 계속 간 얘기를 꺼냈다. 현실적으로 음습한 인간이라 느꼈다. <우연, 지연>우연과 지연은 어찌보면 희생양들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민형과 민호에게 휘말린 희생양들이다. 아버지인 민형에 의해 의대에 붙을 때까지 계속해서 수능을 보고, 성적이 안 나온다고 무시당하였고 민호는 아버지보단 괜찮은 사람이나 결국 그에겐 재미있으니까 관심을 주는 일종의 장기말에 불과했다. 그래서 우연과 지연은 계획을 하나 세운다. 바로 둘 중 한 명이 죽고 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 행세를 하는 것이다. 민형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바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벌 받을 잘못이다.'라는 말이다.민형은 아버지로써 딸들을 대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벌을 받았다. 트윈은 '쌍둥이' 형제 민형과 민호, 민형의 딸 '쌍둥이' 우연과 지연 이렇게 쌍둥이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이며 쌍둥이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들이 작중의 주요 갈등소재가 되곤 한다. 쌍둥이니까, 나와 얼굴이 동일하니까 나에게서 상처입었을 때 나의 쌍둥이 형제에게서 위로를 구하고쌍둥이니까, 나의 딸들이 나의 형제를 아빠라 여기고, 위로를 받으며쌍둥이니까 둘 중 한 명이 죽어도 누가 죽었는지 눈치채지 못한다. 쌍둥이라는 소재를 잘 이용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또 트윈의 특징이라고 하면 작중 선, 악이 관계없다는 것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겐 각자만의 단점이 있다. 민형은 그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완벽한 사람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력주의적 사고에 물들어 있으며, 민호는 그를 잘 모르는 주변인들에게는 성인군자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신의 이득을 중시하는 속물적인 사람이다. 이와 같이 모든 인물들에겐 단점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야기 속의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나를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과거의 실수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내용이 정말 재밌기 때문에 조금 긴 내용임에도 금방 읽게 되었다.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더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4화가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나는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 이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모를 뿐, 여러 재능있는 사람들이 미술에 도전하고, 전형적인 미술체계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미술을 진행하려 했으며, 끝내 절망하거나 성공하였다.이번에 읽은 책 '더 기묘한 미술관'은 이러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작품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들에 대해서 깊이있게 관찰하였다.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어떠한 작품이든 화가들의 인생과 가치관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린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구체화해나가는 단계로 이 단계 속에서 자신이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현재 정신상태가 어떠한지,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든지가 반영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주로 형태가 일그러졌거나, 강렬한 채색방법,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적인 묘사가 드러나는 작품들은 화가의 인생이 불행하였거나,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였으나 주변인들 및 세간에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혹은 독일의 나치와 같이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시대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을 읽으며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을 알게 되었고, 모든 작가가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지만 그래도 그 중 기억에 남는 작가를 한 명 꼽는다면 '펠릭스 누스바움'인거 같다. 펠릭스 누스바움은 유대인으로 재능있는 예술가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불안과 함께 살아왔다. 독일의 1차 세계대전 패배, 나치 정권으로 인해 로마에 있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고, 로마에서 벨기에로 이동하며 방랑 생활을 해야 했다. 벨기에에서 정착하며 전시회를 열 정도로 안정되어도 그는 결국 이방인이였다. 1939년 작가가 그린 작품 '피난처'에는 점점 다가오는 나치의 위협에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무력감과 어디에도 자신의 머물 곳은 없다는 암울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피난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나 결국 나치에게 붙잡히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작가의 작품중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유대인 신분증을 들고, 유대인을 특정짓는 노란 별이 달린 옷을 입고 있다.그림 속 하얀 꽃은 희망을 드러내나, 가지가 잘린 나무는 절망을 나타낸다. 모든것이 폐허가 된 상황 속에서도, 희망보다 절망이 훨씬 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펠릭스 누스바움은 예술이란 자신의 경험을 분석하는 매체라 말했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예술가들의 절망감이나 수치스러운 감정들을 드러낸 작품들을 보며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일부러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다니 이상하다.'확실히 이러한 작품들을 그리지 않았다면 그 당시 동시대에 화가와 같이 살았던 주변 관계자들은 몰라도 몇 백년이 지난 우리들은 그 화가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관람자는 그들의 주변인이 적어낸 서적까지 찾아볼 정도로 관심이 깊진 않기 때문에 작품만을 보고 이런 작품을 그리다니 대단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밝은 인상만 가질 수 있다. 혹은 일부러 화가를 깍아내리려고 부정적으로 글을 쓴 것이라며 서적의 신빙성에 대해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들은 자신의 약점, 단점을 그대로 작품 속에 드러내었다. 어떠한 경험이든 그것을 분석하는 것으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화가들의 예술을 향한 집념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는 거 같다. 미술작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해볼 수 있으며, 작품들에 숨겨진 배경 스토리나 요소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작품을 2배로 즐길 수 있다. 또 미술작품에 관심이 없더래도 새로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니까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백 명 버튼, 김동식, 위즈덤 하우스, 2023100명 중 2명이 파멸하고 1명이 성공한다고 할 때 내가 그 3명 중 한 명일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어느 날 한국에 악마가 나타나 백 명 버튼 생산을 요구했다. 악마는 자신이 백 명 버튼을 판매하며 얻은 수익을 전부 기부한다고 약속했고, 자신이 원하는건 오직 백 명 버튼으로 파멸한 사람들의 불행이라고 했다.정말 달콤한 말이다. 모든 수익 기부라니그러나 이야기를 읽을수록 이게 악마의 계획이였다는걸 알게 된다. 백 명 버튼으로 사람들은 서로 갈등하게 되었으며, 버튼 등록자 수 백 명을 채우기 위해선 뭐든지 하게 되었다.소설을 읽으며 제일 소름돋았던 부분은 살인도 강요도 아닌 공장 부분이였다. 백 명 버튼 공장에선 노동자들에게 버튼을 누르도록 시키고, 만일 노동자중 성공자가 나온다 하더래도 쉽게 도망치지 못하도록 노동자의 손가락 하나 빼고 모든 신체를 망가뜨려놓는다. 인간의 성공욕구를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가장 인상깊은 인물은 백 명 버튼 반대파의 대표적 인물 '김남우'라고 할 수 있다. 백 명 버튼의 생산이 시작된 초창기부터 계속해서 백 명 버튼을 반대해온 인물로써 그는 작중 계속해서 백 명 버튼을 부정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도구라 비판한다. 그러나 백 명 버튼을 이 세상에서 없애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고, 결국 같은 반대파들의 요구에 그는 백 명 버튼을 쓰고 성공자가 됨으로써 백 명 버튼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린다.백 명 버튼을 사용하였음에도 나는 김남우의 정신을 높게 사고 싶다.계속된 성공사례에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반대시위를 해왔으며, 백 명 버튼을 사용할 때도 죽은 반대파 동료들을 보곤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 한다.그러나 이러한 고결한 정신만으로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게 이 소설의 절망적인 부분이다.아무리 노력하고 희망을 가져도 현실은 차갑기만 하였다.소설 첫 부분과 끝 부분에는 두 남자가 대화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중 한 남자는 확신에 찬 모습으로 모든 성공은 누군가가 망해야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남자가 악마를 대변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간 사회 자체가 백 명 버튼이나 다름없다며 성공을 뒷면을 비판하는 남자는 성공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실제로 성공은 누군가가 망해야만 가능하다. 대학도 입학한 성공자들이 있으며 입학에 실패한 사람들이 있다.그러나 이러한 실패를 통해 다른 길을 모색하거나 좀 더 노력해야겠다는 결심 또한 생길 수 있는 것이다.만일 성공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남자가 악마가 아니더래도 주변인에겐 악마나 다름없는 사람일 것이다.계속해서 자신의 성공을 부정하는 인물이 주변에 있다고생각해보자.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날 것이다.'악마가 손해보는 거래를 할리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이 바로 그 말을 정확히 반영해준다. 악마가 가져온 백 명 버튼 때문에 전세계가 고통받았고 결국 문제를 해결하였지만 그 해결방식에는 백 명 버튼이 사용되었다.이 소설 속에서 악마는 이득만 얻고 간다.단편으로 읽는데 20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소설이다. 한 번 읽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핏빛 자오선(Blood Meridian or the Evening Redness in the West)/ 코맥 매카시/ 민음사/ 2009여러 대중 소설들은 인간성의 아름다움, 인간의 의지를 다루며, 우리는 이와 같은 소설들을 보면서 용기와 에너지를 얻는다.하지만 누군가는 지독한 허무주의로 이루어진 잔혹한 현실에 대해서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핏빛 자오선'이 바로 그러한 소설이다. <잔인한 역사>작품은 미국의 서부개척시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부개척시대란 미국사에서 미국의 독립을 전후하여 유럽인의 문명이 닿지 않고 독자적인 원주민 문화가 존재하던 서부 황무지로 미국이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를 말하며, 이때 개척자들의 탐욕에 의해 수많은 학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 작품의 주요 내용은 미국인(개척자) VS 인디언(정착자)의 전투로 이루어져있다. 문제는 이 전투가 생각보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 미국인이든 인디언이든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이니 상대방을 인간으로 보지 않을 것이며, 이들을 죽이고 나면 자신들의 승리를 증명할 전리품이 필요할 것이다. 확실하게 승리를 증명하는 데에는 쓰러트린 자들의 신체 일부야말로 최적의 전리품일 것이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는 상대방의 신체 일부를 자르거나 뜯어내는 묘사가 매우 많이 나온다. 과장해서 작품의 80%가 전투하는 내용이니 독자는 80%의 내용동안 이와 같은 묘사를 계속해서 봐야한다는 말이다. 만약 잔인한 걸 좋아하지 않거나 사실적인 내용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읽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도덕성과 상식의 상실>잔인한 것을 버틸 수 있다 하더래도 이젠 도덕성과 상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작품은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미국인과 인디언의 전투가 주 내용이다. 서로 생김새도 복장도 언어도 모든 것이 다른 이들이 서로를 같은 인종으로 치부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아니하였을 것이다.그래서 작중 전투 묘사를 보면 엄숙함, 진지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죽지 않으려고 꼴사납게 발바둥치며, 상대방을 죽이게 됐을 때는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고 이를 놀이마냥 재밌게 여긴다.인디언에게만 이랬을까? 여정 도중 들리게 되는 마을에선 며칠 내내 술 파티를 열고는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총으로 쏴 죽이고, 몇몇 마을은 떠날 때 불태우기까지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아무 원한도 없는 일반인을 총으로 쏴죽이고는 마을을 불태우다니 그러나 작중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서부 개척 시대는 단기간에 광활한 미개척지에 많은 사람이 퍼져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치안 체계가 심각할 정도로 부실했다. 누가 일반인인지 범죄자인지 구분조차 어려웠을 정도이다. 작품 속 인디언을 잡기 위해 구성된 팀 인원도 극히 일부가 군인이지 나머지는 떼돈을 벌기위해 지원한 민간인이었다. 심지어 주역이었던 '소년'은 팀 구성 당시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명사수라고 거짓말한 후 풀려나 팀에 합류한 것이다. 무법지대에서의 미국인들이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지 이렇게나 꾸밈없이 드러내는 책은 아마 이 책이 유일할 것이다. <죽음만이 진실이다>미국인과 인디언은 영토를 두고 계속해서 다퉈왔으나 결국 그들의 끝은 동일한 죽음이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에겐 정을 붙여선 안 된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죽어있을 수도 있으니까선행을 배풀든, 악행을 저지르든, 인디언이든, 미국인이든, 인종에 관계없이 그 누구든지 결국 죽는다. 작중 미국인들을 죽이고 유마 인디언들이 장작불을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유마 인디언들은 장작에 끼어 죽어가는 적의 두개골을 보며 자신의 운명이라도 읽듯 가만히 모닥불을 바라보았다.이는 지금 승리를 거둔 유마 인디언들도 결국 또 다른 미국인 혹은 정복자에 의하여 자신이 죽인 이들과 같이 장작불 속 머리가 타들어갈거란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역사가 증명한다. 미국은 영토를 확장하는데 성공하였다.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현실의 유마 인디언도 비슷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허무함을 작품은 계속해서 내비치고 있다. 몹시 잔인한 소설이다. 그러나 의미가 있다. 서부개척시대라는 미국 영토 확장 과정이라는 겉표지 속에 감춰진 잔혹한 현실을,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감춰왔던 인간의 잔인함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이다. 원서의 출판 년도가 1985년이라고 한다. 서부개척이 이루어진지 약 100년 정도 지났을 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해져 내려오는 내용에는 거짓과 왜곡이 섞이기 마련이다.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진행했던 기간 및 최초 출판 년도를 고려했을 때 이만큼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은 적을 것이다. 만약 어느 정도 잔인한 묘사를 참을 수만 있다면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읽을 때는 '타임'선정 100대 영문 소설에 선정된 이유가 필력때문인가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준수한 필력도 물론 선정 이유에 포함되겠지만 그보다도 현재 미국 영토에 담긴 핏빛 역사를 숨김없이 드러내었다는데 큰 가산점이 들어갔을 거 같다.
흰/한강/문학동네/2016.5.25흰을 읽으면서, 내가 알던 한강 작가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산뜻한 느낌을 받았다. 한강의 글을 읽을 때마다 특유의 절절함과 어둠이 나를 밑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는다.하지만 ‘흰’을 읽을 때, 내가 그동안 알고 있는 한강 작가의 글이 맞나? 다시 한 번 확인해볼 정도로 그녀가 가진 특유의 어두움이 밝게 표현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겨울이 되면 붕어빵이 떠오르는 것처럼 나에게 ‘흰’은 겨울이 되면 떠오르는 책이 되었다. 몇 번을 읽어도 그녀가 써내려간 글들은 내 마음을 울리다.‘흰’의 내용은 삶과 죽음의 공존을 다루고 있다. 그 속에서 흰은 환부를 감싸는 연고나 거즈처럼 치유를 위한 재료이자, 부드럽고 연약한 죽음에 대한 애도나 부채감을 상징한다.순수함이자 동시에 냉정한 현실의 죽음은 코 끝에 시린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하얗다는 것은 어떤 색도 칠할 수 있는 도화지가 아닌가 그에 죽음은 어떤 것의 시작인지 끝인지 고민하게 한다. 가장 순수하고 맑고 것 하얀 눈, 하얀 웃음, 하얀 도화지와 같은 것들로 사라져 버린 이를 추억하는 것은 순백의 방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