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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다

에너미 마인
글쓴이 고등어조림3개월전

에너미 마인(Enemy Mine)/ 배리 B. 롱이어/ 허블/ 2024



손과 발가락이 3개의 두꺼비를 닮은 외계생명체와 포류하게 된다면? 심지어 그 외계생명체와 전쟁중인 관계라면?



인간과 외계생명체 드랙이 무인 행성의 소유권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이는 상황 속에서 인간 조종사 데이비지와 드랙 조종사 제리는 외딴 행성의 어떤 섬으로 불시착하게 된다.

서로에 대해 욕설만 퍼붓던 그들이였지만, 섬에 있는 사람들이 본인들뿐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생존을 위해 일시적 휴전을 맺는다.


여기서 한 번 제리의 생김새에 대해서 설명하고 넘어간다. 제리는 드랙으로 코가 없으며 이빨은 나뉘어져있지 않고 하나로 붙어있다. 손과 발가락은 3개이며 눈과 피부는 황색 계열의 색을 지녔다. 남녀의 구분이 없으며 혼자서 자가수정이 가능해 별도의 개체가 없어도 임신할 수 있다. 데이비지는 제리에 대해 두꺼비를 닮았다고 표현하였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호감가는 생김새는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에너미 마인은 1985년에 영화화된 적이 있는데, 소설과 달라진 부분도 존재하겠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제리의 모습을 통해 대강 드랙이 어떻게 생긴 생명체인지 알아볼 수 있다.

생김새 이외의 부분에서도 냄새가 난다, 끈적끈적한 점액 등 작중에서는 드랙에 대해 긍정적인 묘사를 거의 해주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도중에는 굳이 이렇게 거부감이 들도록 묘사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우정에서 중요한 것은 생김새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작가는 드랙을 통해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을 표현하였다고 생각한다. 드랙은 인간과 매우 다른 생김새를 지녔지만 그들이 지닌 의지와 긍지는 존경할만한 것이였다.

드랙은 이름을 따로 짓지 않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제리의 가계 제리바의 경우는 5개의 이름을 계속해서 번갈아서 사용하는 중이였다. 데이비지는 이를 듣고 조상들을 기억하기 쉽게 하려고 이름 5개를 번갈아서 사용하냐고 묻는다.

제리는 이에 대하여 구별을 위해서라고 답한다. 또 흔히 있는 이름들에 지나지 않으니까 정말 중요한 각자의 행적이 더 돋보이게 된다고 덧붙인다.

드랙은 이렇게 이름의 형태에 집착하기 보다는 개개인의 인생과 업적을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제리의 경우 200명이나 되는 모든 선조의 전기를 외우고 있었다. 우리 인간이 이름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규명하는 동안, 드랙은 선조들의 수백 세대를 기억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확고히 정립하고 있었다.

글을 읽으며 나도 우리 집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생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여 끝나버렸다. 우리도 드랙과 같이 이름을 번갈아서 사용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과거를 존중하며 기억하려하는 태도는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중 제리는 아이를 낳고 생을 마감하며 데이비지는 제리를 대신하여 제리의 아이 자미스를 키운다. 제리가 죽은 후 데이비지는 절망하며 큰 충격에 빠지게 되는데 이 때 데이비지는 외로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느끼게 된다.

초반부에 서로에게 험담을 하던 때를 생각하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지만 말이 통하는 생명체는 서로밖에 없는 상태에서 1년이나 같이 생활하였다는걸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반응도 아니다. 이를 통해 사람에게 말이 통하는 존재의 여부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자미스와 생활하던 중 섬에 착륙한 비행선에 의해 데이비지는 구조되지만 더 이상 그는 인간 세상에 어울리지 못한다.

전쟁이기 때문에? 아니다. 데이비지가 구조될 때 전쟁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그는 사람들이 장난스레 말하는 드렉에 대한 험담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다시 자미스와 함께 섬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생활하게 된다.


데이비지는 섬으로 돌아가기 전, 자미스에게 섬에게 생활할 때가 지금보다 편했다고 말한다.

나는 이를 물리적인 편함보단 심리적인 편함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물리적으로 편한 건 섬보단 지구일 것이다. 먹을 것이라곤 뱀밖에 없고, 겨울에는 온 몸이 시릴 정도의 추위가 도사리는 섬이 지구보다 편할리가 없다.

하지만 섬에는 차별이 없다. 생김새에 따라, 종족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구분하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데이비지가 섬으로 돌아간 이유라고 생각한다.


적과 함께 섬에 표류해, 적과 지내는 중 적에게 감화되어 지구로 돌아간 후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독자 입장에서 보면 동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다시 고립한다는 씁쓸한 인생이지만 적어도 데이비지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데이비지는 섬에서 생활하면서 진정한 이해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 차별하지 않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배우려고 하고, 서로 목숨을 바쳐서라도 상대방을 구하려고 하는 상황. 이 이상적인 상황은 섬에 단 둘만이 표류했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상황이기도 하다. 어쩌면 데이비지와 제리에겐 단 둘이 고립한 것이 천운의 상황이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립한 덕분에 최고의 우정을 손에 넣었으니까 말이다.



에너미 마인은 미국의 SF잡지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매거진' 1979년 9월 호에 중편소설로 수록되면서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후 작가는 이어지는 이야기를 두 편 더 집필하였고 내가 읽은 2024년본의 경우 이어지는 이야기가 포함된 내용이었다. 1979년도에 이런 내용의 소설이 세상에 나타나다니. 작품은 '대립관계였던 인물들의 화해와 소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만, 이를 그려내는 내용이 정말 완성도가 깊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이라는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집어넣으니까 대립의 이유에 정당성이 생겼고, 이로 인해 서로 화해하였을 때의 만족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대립과 갈등', '화해와 용서'란 현대 시대에서도 충분히 생각해볼 거리를 주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대혐오 시대에는 더욱 중요한 주제이다. 글의 내용이 많이 길지 않으며 내용도 어렵지 않으므로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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