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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묘한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4
화가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나는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 이정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모를 뿐, 여러 재능있는 사람들이 미술에 도전하고, 전형적인 미술체계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미술을 진행하려 했으며, 끝내 절망하거나 성공하였다.
이번에 읽은 책 '더 기묘한 미술관'은 이러한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작품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작품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들에 대해서 깊이있게 관찰하였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어떠한 작품이든 화가들의 인생과 가치관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린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구체화해나가는 단계로 이 단계 속에서 자신이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현재 정신상태가 어떠한지,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든지가 반영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주로 형태가 일그러졌거나, 강렬한 채색방법,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적인 묘사가 드러나는 작품들은 화가의 인생이 불행하였거나,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였으나 주변인들 및 세간에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혹은 독일의 나치와 같이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시대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을 읽으며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을 알게 되었고, 모든 작가가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지만 그래도 그 중 기억에 남는 작가를 한 명 꼽는다면 '펠릭스 누스바움'인거 같다.
펠릭스 누스바움은 유대인으로 재능있는 예술가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을 불안과 함께 살아왔다. 독일의 1차 세계대전 패배, 나치 정권으로 인해 로마에 있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고, 로마에서 벨기에로 이동하며 방랑 생활을 해야 했다. 벨기에에서 정착하며 전시회를 열 정도로 안정되어도 그는 결국 이방인이였다. 1939년 작가가 그린 작품 '피난처'에는 점점 다가오는 나치의 위협에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무력감과 어디에도 자신의 머물 곳은 없다는 암울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피난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나 결국 나치에게 붙잡히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작가의 작품중 '유대인 신분증을 든 자화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유대인 신분증을 들고, 유대인을 특정짓는 노란 별이 달린 옷을 입고 있다.
그림 속 하얀 꽃은 희망을 드러내나, 가지가 잘린 나무는 절망을 나타낸다.
모든것이 폐허가 된 상황 속에서도, 희망보다 절망이 훨씬 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펠릭스 누스바움은 예술이란 자신의 경험을 분석하는 매체라 말했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예술가들의 절망감이나 수치스러운 감정들을 드러낸 작품들을 보며 몇몇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일부러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다니 이상하다.'
확실히 이러한 작품들을 그리지 않았다면 그 당시 동시대에 화가와 같이 살았던 주변 관계자들은 몰라도 몇 백년이 지난 우리들은 그 화가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관람자는 그들의 주변인이 적어낸 서적까지 찾아볼 정도로 관심이 깊진 않기 때문에 작품만을 보고 이런 작품을 그리다니 대단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밝은 인상만 가질 수 있다. 혹은 일부러 화가를 깍아내리려고 부정적으로 글을 쓴 것이라며 서적의 신빙성에 대해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들은 자신의 약점, 단점을 그대로 작품 속에 드러내었다. 어떠한 경험이든 그것을 분석하는 것으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화가들의 예술을 향한 집념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는 거 같다.
미술작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해볼 수 있으며, 작품들에 숨겨진 배경 스토리나 요소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작품을 2배로 즐길 수 있다.
또 미술작품에 관심이 없더래도 새로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니까 한 번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