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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다음 생에는 행복하기를

왕과 사는 남자
글쓴이 포말의 하루4개월전

왕과 사는 남자/장항준/2026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역사를 바라볼 때 단순히 승자의 입장에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나라를 발전시킨 왕이나 정치적으로 성공한 인물을 높게 평가한다.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과정이 좋지 않아도 결과가 좋으면 성공했다고 단정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결과중심주의 성향이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권력을 얻은 사람보다 권력에 의해 삶이 무너진 사람에게 더 눈길이 갔다.

영화 속에서 왕위를 차지한 인물은 자신의 행동이 조선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역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 주장에 당연하게 동의할 수 없었다. 정말 나라를 걱정했다면, 조선의 앞날과 어린 왕을 걱정했다면 다른 방법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왕과 사는 남자>에 나온 단종의 이야기로 말해보자면 수양대군이 진심으로 조선의 미래를 걱정했다면 단종의 스승과 같은 존재가 되어 어린 왕에게 올바른 정치를 가르쳐주고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되어 어린아이를 진심으로 보살펴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이기에 정치를 하기에 미숙한 부분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이유로 왕위를 빼앗고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수양대군을 과연 나라를 위한 충정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하기엔 권위를 잡기 위한 과정과 결과가 너무나 잔인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왕위를 빼앗기 위해 뜻이 맞는 이들과 힘을 합쳐 난을 일으킨 행동은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밖에 보이지 않고 어떤 목적과 이유를 근거로 하더라도 결국 권력을 위해 행동했다고 판단된다. 만약 그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말한다면 그를 진정으로 큰 공을 세운 왕이라고 치켜세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먼저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그는 정말 조선의 미래를 걱정했던 것일까? 아니면 조건의 정통성을 지니고 태어나 당연히 왕이 된 어린 왕이 부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누구보다 큰 권력을 가진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는 진실을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수양대군의 행동은 나라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단 권력을 향한 욕망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안타까웠던 인물은 폐위된 어린 왕인 단종이었다. 단종은 매우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자신의 힘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서 살았을 것이며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을 것이다. 함부로 넘볼 수 없다고 생각한 왕이라는 자리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삶조차도 지킬 수 없었던 그의 모습은 매우 안타깝게 느껴졌다.


영화에서 어린 시절부터 바로 옆에서 단종을 보필하던 궁녀인 매화와 단종의 관계를 보고 많은 여운이 남았다. 단종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원래 자리였던 왕의 자리를 다시 찾기 위한 목적으로 단종을 끝까지 왕으로 모셨던 금성대군과 함께 수양대군에 맞서 싸우고자 유배지를 떠나는 상황에서 자신을 끝까지 지켜줬던 매화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내용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정말 많이 울었었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했을 때부터 그대는 나와 함께했다. 그대는 나의 벗이요, 누이요, 어머니였다. 그 고마웠던 시절을 뒤로하고 나는 길을 떠날 것이다. 먼 훗날 다시 태어나면 그때도 나의 벗이 되어 주면 좋겠구나. 나도 기꺼이 그대의 벗이 될 것이다.” 이 편지의 내용과 함께 단종은 수양대군에 의해 죽게 되고 궁녀인 매화는 자결하게 되는 데 이렇게 단종을 아끼며 끝까지 왕이라고 생각해 준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흔히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나는 승자의 기록 뒤에 가려진 패자의 아픔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왕위를 차지한 사람의 성공보다 왕위를 빼앗긴 어린 왕의 슬픔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영화를 본 후 나는 그가 다음 생에는 권력과 정치의 희생양이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왕으로 태어나지 않아도 좋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부디 다음 생이 있다면 원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꿈을 이루는 그런 평범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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